Archive for June, 2009

Harvest time in Brentwood

전부터 가보려고 했는데 못갔던 체리농장을 이번주말에 다녀왔다. 1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Brentwood 로 다녀왔는데 아침에 출발할때는 약간 흐린 날씨여서 내심 걱정했는데 도착할 무렵에는 날씨가 제법 괜찮아져서 화창한 한여름 날씨가 되었다.

이제 체리따기도 제철이 거의 지나가는지 더이상 손님을 안받는 농장도 있고 해서 걱정했지만 아직 많은 농장이 손님을 받고 있었다.

입장료 같은건 없고 그냥 1파운드에 2달러씩 체리값만 받는데 일찍 가서 그런지 사람도 별로 없고 나무마다 마치 포도송이처럼 체리가 많이 달려 있었다.

곳곳에 비치된 사다리를 사용해서 쉽게 나무위에 달린 체리들을 수확할 수 있었다는…

찬희도 신이나서 한낮의 더위도 잊고 몇시간을 쉬지도 않고 체리따기에 열중했다는.

숨은 일꾼 찬희 덕에 점심 무렵 집으로 돌아갈때 쯤에는 12파운드 정도쯤 땄다. 그래봤자 25달러 밖에 안받는다는…

농장에서 나눠주는 소책자를 보니, 농장이 위치한 brentwood 근방의 농장들이 체리 뿐만아니라 매실등 다양한 제철과일을 직접 수확해 갈 수 있도록 해놓았더라… 다음에는 다른 과일들에도 도전해봐야지.

생각나는대로 글쓰기

많이 바쁘기도 하고 할일도 많은 관계로 앞으로는 생각나는 대로 짧게 많이 글을 싸질러(?) 보려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찬희가 이제 학교에 들어간다. 벌써 미국 나이로는 5살이되고 공식적으로 공립교육을 시작하게 된다. 학기가 시작되면 방학을 제외하고는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아내와 아이가 한국에 다녀왔다. 한국에 가서 너무나 심심해 하기도 하고 그래서 아내가 찬희를 한국 유치원에 보낸 모양이다. skype 로 통화를 하는데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 노래를 부른다. 마침 5월이어서 부모님 은혜 찬양 노래들을 아이들에게 많이 가르치나 보다. 감동했다. 흐뭇하네.

드디어 검색팀 전체가 본사(?) 가 있는 서니베일 메인 캠퍼스로 이사 하게 되었다. 정들었던 MC 캠퍼스는 이제 안녕이고 나도 이제 Carol 과 같은 캠퍼스에서 일하게 된다. 출근 거리도 짧아지고. 자리도 보다 넓어지고. 이제 수많은 training session 들을 전화로 dial-in 하지 않고도 현장에서 들을 수 있게 되서 더욱 좋다. 웬지 소속감도 더 생기고.

요즘은 grid 없이는 하루도 업무를 진행하기가 힘들다. 하루종일 수많은 데이터들과 숫자들과 싸우며 산다. 정리 안하고 몇 주 일하다 보니 어느새 HDFS 내 홈이 6.7 테라더라. 정리좀 하고 살자. 일도 생각도.

이 동네는 정말로 좁은 동네다. 작년에 여기 온지 얼마 안되었을때 첫 직장 선배가 집에서 몇백미터 떨어진 아파트에 살고 있는걸 알고 깜짝 놀랐었다. 새로맺은 미투 친구가 내가 7년전에 짠 코드이야기를 하길래 깜짝 놀라기도 하고.. 아무튼 똑바로 살자.

밖에서 보는 회사상황은 정말로 안습이지만 나는 행복하게 일하고 있다. 내 직장생활 11년 통털어서 요즈음이 제일 행복하다. 미국 올때 즈음에는 정말 내가 선택한 직업에 대해서 애정을 잃어가고 있었지만 여기 와서 모든것이 바뀌었다. 내 일이 좋다. 그리고 할수 있을때까지 계속 하고 싶어졌다.

내 오랜 친구가 “매니저가 a-z 까지 알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물어왔다. 여기와서 보니 적어도 엔지니어링 쪽은 a-z 까지 모르고 매니저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내 매니저는 나에게 일을 시키는 사람이 아니고 나를 도와주는 사람임을 여기와서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대학 때 공부 장학금으로 거의 돈 안내고 학교 다닐정도로 나름 열심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과목 더 듣지 않은 것과 소홀히 한것에 대해 뼈저리게 반성하고 있다. 잘 돌지 않는 머리를 열심히 굴려서 다시 채워 넣고 있다. 그런 중요한 것들을 이수하지 않고도 내가 대학을 제대로 졸업할수 있었다는 사실이 한국 대학교육의 문제점을 조금은 반영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 본다.

오늘은 여기까지.